<241226>물한리 주민들과 해맑음센터 청소년들, 수놓아진 별길에서 하나 되다
- 관리자
- 2024.12.3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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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그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기록은 사소해 보이는 순간이더라도 그것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벚꽃이 피는 봄과 시원하게 계곡물이 흐르는 여름, 주렁주렁 열매 달린 가을과 눈 덮인 겨울. 산책하며 마주한 풍경과 사람, 동물과 식물. 역사와 기록은 그 순간들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기숙형 학교폭력피해치유 전담기관 해맑음센터(상촌면 물한리 643)가 24일 오후 2시 센터 강당에서 「별길 물한리」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판기념회에는 입소한 청소년 20명과 물한리 마을 주민 약 15명이 참석했다. 기념회는 해맑음센터 최재근 부장의 센터 소개로 시작해 조정실 센터장, 물한리 최판용 노인회장, 물한1리 김선도 이장의 축사가 있었다. 이후 책자 발간에 참여한 김하율(중학교 1학년), 박유진(중학교 3학년), 이서준(고등학교 1학년), 임지언(중학교 1학년) 청소년들 소개, 센터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어우러진 ‘무조건’ 축하 공연, 다과회 순으로 진행됐다.
「별길 물한리」는 A4 크기에 76쪽으로 구성돼 있으며 마을유래비 내용과 물한리 사계절 풍경, 동물들의 모습, 마을 지도와 주민 18명의 생애사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 인터뷰와 사진 촬영, 원고 작성 및 책자 편집 모두 청소년들이 협력한 결과물이다. 인터뷰는 8월부터 11월까지, 책자 편집은 11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진행됐다. 책에는 해걸음판(하루해가 지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금시(금세의 방언) 등 지금 청소년들이 많이 쓰지 않는 말들도 충실히 정리되어 있다.
「별길 물한리」 출판을 기획한 서혜연 교사는 기획 의도에 관해 “평소에도 물한리가 아이들을 지켜주고 키워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랫마을의 한 어르신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며 “그분과 알고 지냈던 건 아니지만 여기 사시는 어르신들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체감하게 됐다. 그래서 주민분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됐다. 또 청소년들이 우리 센터에서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하고 있는지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해맑음센터 조정실 센터장은 “센터가 대전에 있었을 때 시청자미디어센터와 센터 청소년들이 신동마을 책을 내기도 했다. 이번에는 저희가 주민분들께 책을 선물해드린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었는데 막상 제작하고 나니 저희가 주민분들께 많이 배웠음을 느꼈다”며 “청소년들이 어르신들께서 어려운 시기를 헤쳐오신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깨우치기도 했고 어르신들께서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하시다는 걸 느끼게 됐다. (센터가) 대전에 있을 때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어르신들께 미용이나 파마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여기선 자원봉사자가 없어 자원봉사가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여건이 된다면 어르신들께 더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물한1리 김선도(60) 이장은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물한리에서 나갔다가 14년 전쯤 다시 돌아왔다. 옛날에는 젊은 또래가 많았는데 다시 들어온 뒤에는 제가 마을에서 세 번째로 젊은 사람”이라며 “학생들이 마을에서 활력소가 되고 여기 있다 보면 밝아지는 게 눈에 보여 기쁘다”고 말했다. 물한리 최판용(72) 노인회장은 “어디 가서 인터뷰하고 책자를 만드는 경험을 해보겠나 싶다. 마을 사람들이 인터뷰도 자연스럽게 하더라.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을 책을 제작한 청소년들이 물한1리 경로당 앞에서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김하율(중학교 1학년), 박유진(중학교 3학년), 임지언(중학교 1학년), 이서준(고등학교 1학년) 청소년
마을 책 제작한 청소년들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마을 책을 제작한 김하율(중학교 1학년), 박유진(중학교 3학년), 이서준(고등학교 1학년), 임지언(중학교 1학년) 청소년에게 마을 책을 제작한 소감을 물어보았다. 사진 촬영을 맡은 김하율 청소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진을 찍을 때 어르신들의 인상이 다 좋으셨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원래 사진을 찍어왔는데 이번에 새로운 걸 해보니까 더 기분이 좋고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포토샵으로 어르신들 얼굴을 보정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고요. 저는 게임 개발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데 어르신들께서 목표를 위해 노력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어르신들처럼 목표를 이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발로란트 프로게이머가 꿈인 이서준 청소년은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말씀을 들으며 꿈에 대한 동기부여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르신 중 한 분께서 어렸을 때부터 버스 기사가 꿈이었다고 하셨어요. 차를 모는 게 정말 멋있어 보였다고. 그런데 초등학교를 나오고 바로 돈을 벌러 사회에 진출했는데 자기를 받아주지 않아 많이 힘드셨대요. 사회에서 증명하려고 노력하셨고 결국 버스 기사로 30년 동안 일하셨다고 하셨어요. 자신의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프로게이머의 길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꿈을 위해 달려가셨던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편집장을 맡았던 박유진 청소년은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희가 어르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르신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게 돼 좋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편분께서 교통사고 때문에 머리를 다치셔서 기억을 잃으셨는데 아내분께서 옆에서 돌봐주시고 간호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의 힘으로 안 될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 보조를 맡았던 임지언 청소년은 “눈이 내리는 날도 가고 힘들었는데 이야기도 들어보고 하니 뿌듯했어요. 보통 시골에 올 일이 많이 없어 어르신들을 뵈면 무서운 느낌도 들었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더 가까워지고 또 순수한 면도 있으시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한편 해맑음센터는 교육부가 지원하고 (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위탁 운영하는 국내 유일 전국 단위 기숙형 학교폭력 피해치유 전담기관이다.
출처 : 주간영동(http://www.bluesta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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